권호근 선생님의 월요편지

의지와 표상_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

오직 하나뿐인 그대 2024. 1. 29. 11:48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가 요즘 서점가 베스트셀러라고 합니다. 19세기 독일 염세주의 철학자 철학이 21세기 한국의 중년들이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한국 중년들의 삶이 힘들고 팍팍하기 때문입니다.

 

폴란드 단히치 시 부유한 사업가의 아들로 태어난 쇼펜하우어는 많은 상속을 받은 덕분에 평생 일하지 않고 철학 공부를 하면서 편안한 삶을 살았습니다. 유년 시절 견문을 넓히기 위하여 유럽 여러 곳을 여행 중 프랑스 툴롱 군항에서 강제 노동을 하는 참혹한 노예 노역 현장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습니다. 또한 베를린 콜레라 창궐 시 죽음에 대한 공포, 아버지의 자살과 젊은 미망인이 된 어머니의 남성 편력과 이로 인한 어머니와 절연, 철학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분노 등 쇼펜하우어 젊은 날의 삶은 정신적으로는 고통스러웠습니다.

쇼펜하우어의 염세주의 철학은 자신의 고통스러운 삶에서 해방되는 해법을 찾으려는 노력의 결과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플라톤과 칸트 그리고 힌두 철학에 영향을 받은 쇼펜하우어 철학에서 핵심 단어는 의지와 표상입니다. 서양 관념 철학자들은 항상 우리 눈에 보이는 현상계는 허상이고 세계 실체는 따로 있다고 생각합니다. 플라톤은 세계 실체를 이데아라고 주장했고 칸트는 물자체 그리고 쇼펜하우어는 인간의 의지라고 주장합니다.

쇼펜하우어는 눈에 보이는 세계는 의지가 나타난 표상으로 힌두 철학에서 말하는 마야의 베일로 싸여진 허상이라고 주장합니다.

칸트 철학이 이성을 강조했다면 쇼펜하우어가 주장하는 의지는 이성보다 감성에 지배받는 맹목적이고 부정적입니다. 육체와 밀접히 연결된 의지는 생존 본능과 종족 번식으로 환원됩니다. 그러나 의지가 충족되면 잠시 행복하나 곧 권태와 허무의 고통에 빠집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물질적 빈곤은 채찍질이지만 권태는 부유한 사람들에 대한 채찍질입니다. 이러한 인간의 야누스적인 양면성이 바로 삶의 본질인 고통이라고 쇼펜하우어는 주장합니다.

 

인간이 고통에서 해방되기 위해서는 의지의 맹목적인 지배로부터 해방되어야 합니다. 그 방법은 예술에 몰입하는 것으로 특히 음악은 의지의 직접적인 표현이므로 음악 감상을 통하여 고통을 감속시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일시적인 방법으로 긍극적으로는 금욕 생활과 잡념이 사라진 마음의 평정 상태 즉 해탈에 도달해야 의지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고 쇼펜하우어는 주장합니다. 쇼펜하우어는 인간의 윤리적 힘은 칸트의 정언명법과 같은 이성 보다는 다른 사람 고통에 동참하는 同苦(동고: 함께 고생함 ) 같은 감정에서 나온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쇼펜하우어의 삶은 금욕적인 삶과는 거리가 먼 관능적이고 미식을 즐기는 사치스런 생활을 하였다고 합니다. 특히 자신을 돌보아 주던 재봉사를 계단에서 밀쳐서 중상을 입히는 비인도적인 행동을 하였다는 점에서 철학자 러셀은 쇼펜하우어 철학은 진지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쇼펜하우어 철학힌두 불교 철학플라톤과 칸트 철학통합한 것입니다. 석가모니는 2,500년 전 인간의 삶이 생로병사와 욕망에서 허우적거리는 苦海(고해: 고통의 세계라는 뜻)나 火宅( 화택: 불이 난 집을 뜻하는 불교 용어로 번뇌와 고통을 의미함) 같이 고통스러운 것이기 때문에 고통으로 벗어나려면 욕망을 잠재우고 해탈을 해야 한다고 설파 한 바 있습니다.

쇼펜하우어의 同苦의 개념도 지장보살이 지옥에서 고통받는 중생들이 성불할 때까지 지옥에서 중생과 同苦 하겠다는 불교의 지장보살 사상과 유사합니다.

 

그러나 욕망에서 해방되고 해탈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수십 만년 진화의 결과인 생존 본능과 종족 보전인간의 강력한 의지입니다.

 

과연 쇼펜하우어 철학이 현재 한국 중년들의 삶의 고통에 해독제는 될 수 있을까? 하는 것이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를 읽은 후 느낌입니다.

 

2024년 1월 29일 권 호 근

 

 

아르투어 쇼펜하우어(1788-18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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