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호근 선생님의 월요편지

어느 스님의 죽음

오직 하나뿐인 그대 2023. 12. 23. 09:40

오래전에 전에 중국 선사들의 임종을 기술한 책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한결같이 평범한 임종이 아니라 특이한 임종입니다.

흔히 스님들은 좌탈입망 즉 앉아서 임종해야 득도한 스님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인지 책에 기술된 중국 스님들은 한결같이 특이한 임종을 합니다.

좌탈입망은 보통이고 서서 하거나 거꾸로 서서 임종을 하기도 합니다.

스스로 관에 들어가서 제자들에게 못질하라고 하는 스님도 있습니다.

그중 가장 불교적인 임종은 죽을 때를 되자 아무도 모르게 산속으로 들어가 옷과 신발을 바위 위에 벗어 놓고 산 짐승과 벌레의 먹이로 육신을 보시하는 임종입니다.

 

러나 특이한 임종 하여도 득도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최초로 득도한 석가모니도 편안하게 옆으로 누어서 임종하였습니다.

제가 보기에 가장 바람직하고 불교적으로 임종한 분은 법정 스님입니다.

무소유를 강조하였던 스님은 말 그대로 무소유 임종을 실천하신 분입니다.

죽기 전 제자들에게 죽은 후에 일체 사리 수습하지 말고 사리탑과 기념비도 세우지 말라고 엄명하고 자신이 저술한 책도 더 이상의 출판하지 말라는 유언을 하였다고 합니다.

스님은 임종 후 평소 입던 옷을 입고 관도 없이 들것에 실려 제자들에 의해 운구되었습니다.

화장 후에는 평소 기거하던 송광사 불일암 앞에 직접 심고 가꾸던 후박나무 아래와 서울에 오면 머물던 길상사 요사채 담장 옆에 유골을 뿌리고 작은 안내판 하나만을 세웠습니다.

 

최근 불교계의 유명한 스님 한 분이 절집을 태우면서 자살해서 사회에 화제가 되었습니다.

불교 종단에서는 소신공양인 자화장이라고 주장하나 보통 사람들로서는 이해할 수 없고 파괴적이고 괴이한 자살입니다.

이 스님은 총무원 원장을 두 번 역임하였고 선거철만 되면 유명 정치인들이 눈도장 찌기 위해 줄을 서던 권승입니다.

제자 4명에게 2억씩 8억을 모아서 절집을 복원하라는 유서를 남겼다고 하니 평소 종단 재산을 자신의 돈으로 간주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불탄 절집을 복원하기 위한 막대한 비용을 조달하려면 신자들의 허리는 얼마나 휠 것인지? 그냥 생각해도 이해 불가한 괴이한 죽음입니다.

자이나교 승려들은 악업을 없애기 고행을 합니다.

이 스님도 평소 지은 죄를 참회하고 악업을 없애기 위해서 고통스러운 죽음을 택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러나 절집을 방화하는 방법으로 자살한 것은 살생 금지라는 불교 제일의 계율을 어겼다는 점에서 이해하기 힘든 임종입니다.

 

선불교가 주류인 한국 조계종 핵심 사상은 금강경의 空 사상입니다.

선불교는 누구든 참선을 하면 득도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공 사상 때문인지 선불교는 사회 윤리와 규범을 뛰어넘는 transethical 한 측면이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 근대 선불교 시조 경허선사는 말년에 非僧非俗한 상태로 계율과 사회 규범을 무시한 행동 때문에 불교계일부에서는 비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경허선사는 말년 비승비속 상태로 오지인 산수갑산에 들어가서 시골 학생 훈장을 하다가 소리 없이 흔적을 감추었습니다. 선승다운 말년 모습입니다.

득도했다는 스님 중 인연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고 파계를 하고 비규범적인 행동을 하는 스님도 있습니다.

그러나 과연 해탈하여 인연으로부터 자유로운 스님은 과연 존재하는가? 생각해 봅니다.

 

흔히 니코스 카잔차키스 소설 주인공 조르바를 자유인의 표상으로 언급합니다.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 후반부에 나오는 조르바의 독백입니다.

평생 자유인으로 살았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자신은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더 긴 끈에 매어 살았을 뿐이다”.

 

30억 년 동안 유전자로 이어진 인간 본성으로부터 인간이 자유로워지는 것은 힘든 일입니다.

 

2023년 12월 18일 권호근

 

 

오래전 장엄한 아침 예불로 유명한 송광사 템플 스테이에 참가한 적이 있습니다. 아침 예불을 다시 경험하고자 새벽에 송광사에 갔다가 불일암에 올라갔다 내려오는 길에 법정 스님을 마주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스님의 안광이 얼마나 강렬한지 지금도 기억에 각인되어 있습니다.

송광사 불일암 앞에 심어있는 스님 유골이 묻힌 후박나무. 법정 스님이 직접 심고 가꾼 후박나무는 스님 살아서는 그늘이 되어 휴식처가 되었고 임종 후에는 영원한 안식처가 되었습니다.

송광사
법정스님 계신 곳, 송광사

 

 

1963년 6월 11일 베트남의 틱꽝득(1897~1963) 스님이 소신공양

 

니코스 카잔카키스, 그리스인 조르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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