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호근 선생님의 월요편지

곡속장 (穀觫章)

오직 하나뿐인 그대 2024. 1. 2. 09:46

맹자 곡속장은 춘추전국 시절 제나라 선왕의 혼종 의식에 관한 이야기를 기술하고 있습니다. 당시 제나라는 종을 만들면 종에다 소피를 바르는 혼종 의식을 행하였습니다. 어느날 선왕이 보니 소가 슬피 울며 끌려가고 있었습니다. 신하에게 연유를 물으니 혼종 의식에 사용하려 소를 도살하기 위해서 끌고 간다고 답했습니다. 그러자 선왕이 소가 불쌍하니 혼종 의식 시 양으로 대체하라고 명합니다. 소나 양이나 같은 생명체 인데 선왕이 혼종 의식 시 소를 죽이지 말고 양을 죽이라고 한 것은 소는 직접 눈으로 보았고 양은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맹자는 소를 보고도 측은지심을 느끼는 선왕은 성군이 될 수 있다고 말하지만 곡속장에서 말하는 것은 경험과 관계의 문제입니다. 측은지심도 그냥 생기는 것이 아니라 경험과 관계를 해야 생깁니다.

 

맹자 곡속장을 읽으면서 학생 시절 읽었던 80년대 베스트셀러 소설 조세희 작가의 “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일명 난쏘공)”이 떠오릅니다. 도시 하층민들의 힘든 삶을 묘사한 소설인데 내용 중 기르던 애완견이 죽으면 울어도 옆집 사람이 굶어 죽는 것에는 무관심한 도시민의 비정함을 개탄하는 내용입니다. 젊은 시절 글을 읽으면서 도시민의 비정함을 개탄하는 조세희 작가 글에 공감하였지만 곡속장을 읽으면서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애완견 죽음은 직접 경험했기 때문에 슬픈 것이고 이웃 주민이 아사한 것은 직접적 경험한 것이 아니고 간접적으로 풍문으로 들은 것이기 때문에 무관심했던 것입니다.

 

얼마 전 둘째 딸이 기르던 고양이를 맡아 달라고 해서 얼마간 고양이를 키운 적이 있습니다. 평소 애완동물에 관심이 없던 저로서는 새로운 경험입니다. 내가 밤에 잘 때면 고양이가 슬그머니 와서 내 팔을 베고 자고 있습니다. 외출했다 들어오면 벼락같이 현관 앞으로 뛰어나와 야옹거립니다. 고양이를 기르기 전에 공원에서 유모차에 애완견을 태우고 다니는 여자들을 보면 좀 한심하다는 생각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고양이를 키우면서 유모차에 애완견을 태우고 다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양이에 대한 최근 경험 때문에 생각이 변화한 것입니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개식용 금지 문제도 경험에 차이에서 생기는 갈등입니다.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1788-1860)는 170년 전 동물의 생명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였습니다. 기독교적인 세계관은 인간을 만물의 영장으로 여기고 모든 자연과 지구의 생명체를 인간을 위해서 사용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깁니다. 인간은 하느님이 자신의 형상으로 창조한 존재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세계관 때문에 인간에 의한 자연 파괴가 심화 되었고 많은 생명체들이 멸종되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이 선한 관리자가 되기를 원하였지 자연과 생명 파괴를 허락하지는 않았습니다. 반면에 힌두교와 불교에서는 모든 생명은 인드라망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벌레 한 마리도 죽이지 말라고 합니다. 쇼펜하우어가 동물 생명권을 주장한 이유는 아마도 힌두 사상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맹자가 주장하는 인간의 측은지심이나 아담 스미스가 도덕 감성론에서 주장하는 인간 본성에 내재한 공감능력(sympath)은 머리에 영역인 이성이 아니고 가슴의 영역인 감성에 의해 작동됩니다. 측은지심이나 공감 능력이 작동하려면 보거나 들어서는 안 되고 가슴으로 직접 경험해야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먼 거리는 머리에서 가슴까지 거리라는 말이 있습니다. 머리로는 이해해도 가슴으로 공감하기는 힘들기 때문입니다.

 

百聞不如一見, 百見不如一行입니다.

행동하고 참여해야 공감 능력도 생기고 재미있는 삶이 됩니다.

월요편지 가족 여러분 새해에는 직접 참여하고 경험하는 다이나믹하고 재미있는 삶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Just do it!

 

2024년 1월 2일 권 호 근

 

월요편지 가족 여러분 새해에도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야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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