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호근 선생님의 월요편지

쌀 농사와 밀 농사

오직 하나뿐인 그대 2023. 3. 27. 12:22

3년간 전 세계적 위기를 불러왔던 코로나 사태도 어느덧 종식되고 있습니다. 요번 코로나 사태는 팬데믹 전염병은 국지적인 문제가 아니라 세계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대처 방법도 개인과 국가적 차원을 넘어 세계적 차원에서 대처해야 한다는 인식하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코로나 위기 당시 개인의 자유를 강조하는 일부 서양인들은 강제적 방역 지침을 거부하였지만 모든 한국인들은 자발적으로 동참하였습니다. 저 역시 코로나 사태 때 일사불란하게 마스크를 착용하는 것을 보면서 한국인의 이러한 행동이 어디서 유래 된 것인가 하는 의문을 가졌습니다.

 

감염병을 대처하는 동서양 사람들의 행동 차이를 서강대학교 사회학과 이철승 교수는 “쌀 재난 국가”라는 자신의 저서에서 동양의 쌀 농사와 서양의 밀 농사 차이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서양인들의 주식은 밀로 만든 빵이지만 동양인들 주식은 전통적으로 쌀입니다. 쌀은 맛도 좋은 완전식품이지만 서양인들의 주식인 밀은 영양학적으로 불완전 식품이기 때문에 항상 유제품을 섭취해야 합니다. 때문에 서양에서는 유제품을 얻기 위한 낙농목축업이 일찍부터 발전하였습니다. 밀 농사는 개인 또는 가족 단위로 경작할 수 있지만 쌀농사는 밀 농사에 비해서 단위 정보당 생산량은 4배 정도 많지만 많은 노동력을 단기간에 집중적으로 투입해야 합니다. 수작이기 때문에 관계 수리 시설 건설을 위해 집단적인 노동력이 투입되어야 하고 특히 아시아 지역에서 주기적으로 발생하는 태풍으로 인한 빈번하게 발생하는 홍수와 가뭄 같은 자연재해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중앙집권적인 국가가 요구되었습니다. 이러한 농법과 환경의 차이 때문에 서양에서는 지방 분권적인 봉건제가 성립되었고 동양에서는 강력한 중앙집권적이 정치 제도가 성립되었습니다. 농법의 차이로 인해 밀 농사 위주의 서양에서는 개인의식이 발달하였지만 쌀 농사 위주의 동양에서는 개인의식보다는 집단적인 공동체 의식이 발전하였습니다.

 

한국 농촌에는 전통적으로 농사를 위한 마을 공동체 조직인 두레가 발달하였습니다. 두레는 농사 협동 조직이지만 마을 길흉사에는 상부상조하는 일종의 공적 부조의 성격도 가지고 있습니다. 씨족 내에서는 위계질서가 있지만 가구 단위로 진행되는 농경을 할 때는 평등한 협업 조직입니다. 협업이 가능한 것은 내가 이웃의 김매기에 노동을 제공했다면 내가 김매기 할 때 당연히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신뢰가 존재하였기에 가능했습니다. 이러한 협업은 농법을 표준화하고 농사 기술을 공유하여 농법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벼농사는 공동 노동조직이기 때문에 공동 노동은 하지만 소유는 따로 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협업은 하지만 비교와 질시가 존재하는 심리적으로 묘한 이중구조를 형성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비교와 질시는 생산을 증대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동기가 됩니다.

 

이러한 협업과 경쟁이라는 농촌 사회의 사회 구조와 한국인의 의식 구조는 산업화 시기 공장으로 그대로 이식되어 한국의 급속한 산업화의 원동력이 됩니다. 위계적이고 일사불란한 조직이지만 성과를 내기 위해 자발적으로 열심히 일하는 동양의 조직 문화는 글로벌 자본주의 체제에서 동아시아 모델로 자리 잡게 됩니다. 어떻게 보면 동아시아에는 오래전부터 시장 친화적인 협업 시스템을 존재하고 있었고 이러한 것이 동아시아의 급속한 경제 발전이 원동력이라고 저자는 보고 있습니다.

 

그간 서구의 사회과학자들은 동양에서는 신뢰의 범위가 가족에 갇혀있고 봉건적 체면 문화와 신분제로 인해서 동양에서는 금융자본주의가 발전할 수 없다는 주장하였습니다. 칼 마르크스는 일찍이 아시아적 생산 양식 논쟁에서 동양에서는 절대왕권 체제로 인해 봉건제 성립이 불가능하여서 노예제, 봉건제, 자본주의, 공산주의로 발전하는 역사 발전 법칙이 불가능한 정체된 사회라는 주장을 하였습니다. 이러한 주장은 일제 식민사관의 정체성 이론의 근거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저자는 이러한 주장은 서구학자들의 동양을 폄훼하는 오리엔탈리즘의 발로라고 주장합니다. 동아시아에서 경제가 빠르게 발전한 요인은 유교 자본주의 영향도 있지만 동양 사회 특유의 협업과 조율이라는 공동체 문화 때문이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입니다. 코로나 사태 시 중국이나 한국인들이 국가 방역 지침에 잘 복종하는 것을 보고 서구인들은 개인의 자유를 무시하는 동양 사회 특유의 국가주의 권위주의 집단주의 때문이라는 주장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동양인들이 방역에 동참했던 것은 동양 사회 특유의 공동체를 위한 협업과 조율 문화 때문입니다.

 

21세계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와 팬데믹 전염병 발생과 같은 지구적인 재난은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해결 불가능하고 지구적 공동체 차원에서 공동체적 대응을 해야 가능합니다. 협업과 조율이라는 아시아적 공동체 가치는 21세기 더욱 필요한 사회적 덕목입니다.

 

2022년 3월 20일 권 호 근

이 글은 우현 선생님의 허락을 받아 게시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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